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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프라임 <조선 두부, 왜국을 깨우다>

 

2014. 3. 12. 방송

 

프로듀서 김유열

글/구성, 연출 윤동혁

 

 

 

 

일본 고치 지역에서 가츠오(가다랑어)를 짚에 구워먹는 방식의 유래

 

 

 

그리고 일제강점기때에는 조선사람들은 마늘을 먹어서 머리가 나쁘다, 마늘냄새 때문에 가까이 갈 수 없다며 마늘을 경멸하던 일본사람들이 가다랑어 생선구이를 먹을 때는 마늘과 함께 먹는 모습

 

이처럼 비린내가 심한 생선을 짚에 구워 먹는 것과 생선에 마늘을 곁들여 먹는, 일본에선 찾기 힘든 식문화가 모두 두부와 관련이 있다고 함.

 

그리고 또 한가지,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마스틱이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겐삐라고 부르는 과자의 유래 또한 관련이 있다고.

 

 

돼지껍데기와 개껍데기... 관련이 있는 것일까?

 

 

 

개산집 : 17~18세기 도사(옛 고치)의 일상생활을 상세히 기록해 놓은 책.

 

 

옛 고치지역 성주가 조선침략 후(임진왜란) 돌아올 때 박효인을 비롯, 두부 장인을 데려왔다.

 

 

당시 성주 쵸소가베 모토치카는 조선사람의 코 6천6백개를 베어 소금에 절여 6개의 나무통에 담아 가져갔다고 함.......

경상남도 사천항을 통해 출항.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부하를 시켜 그 수를 세어보고 확인증을 써주었다고 함...... 천하의 나쁜 놈들....

 

 

잡혀간 조선인들은 소개돼지와 함께 사경을 헤메이다 시코쿠 오즈현에 도착. 중간에 자결을 선택한 사람도 많았음.

 

 

 

성주 쵸소가베 모토치카에게 잡힌 포로 380명은 다시 고행길에 오름. 다시 고치까지 이동.

 

 

기록에는 그냥 생포한 380명을 데리고 왔다고만 쓰여있을 뿐인데, 고치 역사박물관에 가면 흔적을 찾을 수 있음.

 

 

바로 두부장수. '당인 두부'라는 푯말이 쓰여있음.

 

 

가가미강 안내푯말에도 보면 '조선사람들이 여기에 살며 두부를 만들었다'는 문구가 기록

 

 

당시 '당인'이란 중국사람만 이르는 말이 아니라, 조선사람을 포함한 아시아인을 뜻하는 말이었음

 

 

일본 두부의 역사는 임진왜란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것은 교토에 한정.

산과 바다로 가로막혀 외딴 지역인 고치에 두부를 전파한 것은 조선에서 잡혀간 박호인 가족.

 

 

 

함께 잡혀간 박호인의 아들 박원혁은 '아키즈키'라는 성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두부 사업을 시작.

관직에 올라 독립적으로 두부좌를 다스리기에 이름.

 

 

성주 쵸소가베 모토치카는 비록 포로였지만 박호인 가족을 극진히 모심.

이후 세상이 바뀌고 야마노우치 카즈토요가 새로운 성주로 왔지만 새영주 역시 극진히 대접함.

남로지에 보면, 문제나 불편이 있을 시엔 언제든 와서 말해달라는 언급이 기록됨.

 

 

하지만 박호인은 성주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포로로 붙잡힌지 20년만에 고향길에 오름.

 

 

우리 조상의 코를 무참히 베어갔던 일본인들은 조선통신사를 극진히 대접함;;; 음식도 산해진미...

당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정부는 한번 조선통신사를 대접함에 있어 지금말로 GDP 20%까지 썼다고 함.

 

 

상차림 중에는 연구자들이 알 수 없는 이름 한가지가 올라옴. 바로 '겐삐야키(개껍질 구이)'

 

이를 통해 제작진은 타향살이에 힘들던 조상들이 한여름에 보양식을 먹고

그 껍질은 구워서 말려뒀다가 육포처럼 아껴먹지 않았겠느냐는 추리함.

그 육포가 밀가루 과자로 바뀌고, 19세기 후반 고구마가 수입되면서 지금의 형태에 이르렀다는 것.

 

 

 

조상들은 도토리묵도 만들어 더 싸게 팔았다고 함.

그래서 지금도 일본 타지역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도토리묵(도토리두부)를 조금이지만 생산하고 있음.

 

 

그리고 곤약도 두부를 만들던 조선사람들이 만들었다고 함. 비지도 일본사람들 식탁에 처음 올려둠.

 

 

고치의 옛두부는 수분을 완전히 빼냄. 그래서 매우 단단해짐.

400년전에 금방 쉬어버리는 순두부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 물기를 다 빼고 단단하게 만듦. 그러면 겉면만 부패하기 때문에 안쪽을 긁어먹을 수 있었던 것.

 

 

이 사장님 쫌 감동이었음.... 일본사람이지만 이렇게 표시를 하려고 한다는 것이...

이름도 '당인' 이고, 옆에는 한반도 지도와 화살표로 유래 경로를, 뒤에는 역사서의 내용을 비교적 자세히 서술해두었다고 함.

(난 읽지는 못하지만)

 

 

 

제작진은 내내 사회?를 봤던 일본 배우를 이름모를 조선 여성의 묘에 데려가서 마치 참회를 시키듯 참배를 하게 하는데... 흐음

계속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교류를 하게 되었고...' 이런 말만 되풀이해서;; 좀 뭐지 싶었음.

자기도 일본사람이고, 일본에서 먹고사는 연예인이니 괜히 사과하고 인지도 떨어지고 싶진 않았겠지만....

가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의 묘에 앉아 '그래도 이정도면 나쁘지 않잖아요 그쵸?'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여서

이렇게 찜찜하고 기분도 안좋을 장면을 왜 굳이 넣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음.

 

 

 

어쨋든 마무리는, 박호인의 자손 아카츠키 야스히코 할아버지와 당인두부를 재현하는 다나카 유키히코 사장님이 만나서 훈훈하게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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